개업하면서 폐업 간판 다는 가게
모처럼 단비가 내리는 새벽 국사봉은 역시 아름답고 상쾌하다.
돌아오는 길에 보았다.
늘 다니던 길에 있던 핸드폰 가게가 문을 닫고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어쩌다 한번 커피도 얻어마셨던 가겐데 일 년도 안 되어 포기한 것이다. 기운없이 미소짓던 주인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생활 밀착형 블로그를 운영하겠다며 어렵게 초대장을 받아 개설해 놓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던 차에 글감 하나 얻었다는 마음에서다.
이 길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이 가게가 핸드폰 가게였다가 업종을 변경해 새로 개점하는 가게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간판 아닌 현수막을 내건 주인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닐 것이다. ‘신용’이 장사의 기본이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개업하면서 뻔뻔스럽게 폐업 현수막을 걸고 영업을 하는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구매를 하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구매하는 주민 입장에서는 큰 금액도 아니니 이런 곳에서 물건을 구매한다고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가게의 주인이 정직하냐는 것보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느냐가 구매 판단의 더 중요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지키지도 않은 공약을 내세워 당선된 후 아무렇지도 않게 팽개치고 시치미를 떼도 아무렇지도 않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국민들은 무지해서 속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속아준다. 겉만 번지르한 이상적인 무엇이 아니라, 좀더 실속 있고 나에게 이익이 되는 대가를 얻고자 하는 ‘실용’을 선택한 것이다. 가짜 폐업 현수막을 걸고 개업하는 가게의 주인이 거짓말 하는 줄 뻔히 알면서 1000원짜리 속옷을 사듯이 말이다.
그러나 정치는 1000원짜리 속옷이 아니다. 푼돈으로 사서 금방 버릴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가짜 정치, 천박하고 혐오스러운 싸구려 정치가 우리의 삶을 규정하며, 멀쩡한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기도하고, 평생토록 뽑아내지 못할 말뚝을 우리의 가슴에 박아버린다.
이제는 적당한 실용을 추구하기보다 보다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 기초, 기본적인 가치를 추구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깨닫게 되었다. 알고도 속아준 국민들은 지난 사월 세월호 참사를 통해 가짜 민생 챙기기, 가짜 복지에, 가짜 정치에 속아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하고 새롭게 다짐하고 있다. ‘이제 기본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