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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사태와 언론 그리고 게으른 사람

하누재 2020. 1. 9. 03:53

이명 박근혜 정권 시절, 그나마 있었던 매체가 '미디어 오늘'이었다. '프레시안' 것도 아닌 내용을 지나치게 난삽하고 모호하게 전달하는 반면 '미디어 오늘' 이명박 정권과 언론의 천인공노할 반인도적인 '천안함 조작사건' 가장 공정한 입장에서 평이하고 명확하게 진실을 보도하려고 애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트럼프의 반문명적 이기적인 패권주의와 유치한 자기 과시를 생방송으로 지켜보면서 답답한 마음을   어쩔 없어 할일을 미뤄두고 미디어 오늘을클릭했다. 첫화면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황우석' 지금은 패배자로 사라져, 언론에 언급되는 일이 거의  없는 이름.

기사를 읽으며, 10년도 넘은 일이지만 나도 그와 관련된 글을 섰다는 생각이 났다. '나는 사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 강자를 혐오하고 약자를 동정하는 나의 성향 위기에   몰린 그를 두둔하는 입장에 서지는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에 십수년 전에 글을 찾아보았다.

다음 링크는 미디어 오늘의 기사와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나의 글이다.

게으른 자신을 채찍하기 위해 모처럼 블로그에 올린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571

 

 

 

황 교수 사태를 보며

 

중요한 성과는 무지한 네티즌에게 산 교육이 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무지한 네티즌이란 무조건 국익의 편에 서서 황 교수를 두둔하고 MBC를 까는 편에 선 사람을 말한다. 물론 필자도 네티즌의 한 사람이니 이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올바른 여론은 국가의 존망과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다. 설사 그것이 옳은 것이라 할지라도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데 하물며 일부 언론들에 의해 국익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어 있는 잘못된 보도에 근거한 것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을 것 아닌가? 2차 세계 대전을 치르고 인류의 공적이 된 나찌나 일본이 바로 그런 사례다. 그들은 당대에 엄청난 국민적 지지를 토대로 게르만 통일과 대동아시아 공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줄기 세포 연구, 아직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인류의 재앙인 핵폭탄을 개발해 패권을 장악하고 현생 인류를 위협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에 있다. 국익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지 하는 비이성적이며 보수적인 그 나라에서도 금단의 구역으로 지정해 연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줄기 세포. 즉 아직은 미지의 분야일 뿐 아니라 그 기술이 인류와 생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정확한 판가름을 하는 것이 어려운 분야라는 뜻일 것이다. 좀더 명확하게 말해 줄기 세포, 이와 관련된 기술이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르는 기술이라는 얘기다.

 

노벨이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토목이나 건축 분야를 넘어 살상의 무기로 쓰이는 것을 보고 참회하는 마음에 노벨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교육열이 높은 우리 국민이라면 다 아는 상식일 것이다. 유전 공학에 의한 체세포 복제도 음과 양이 분명히 있고, 악용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것을 모를 국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황우석)이 받을 수 있는 노벨상을 남이 잘되는 것을 못 보는 못된 국민성때문에 못 받게 되어 원통해, 이런 원통한 일이 없도록 하고 진실이 승리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칫 아기를 잉태하지 못하게 될 위험을 감수하며 황 교수의 숭고한 연구를 위해 자신의 난자를 기꺼이 제공하겠다는 젊은 여성의 무용담이 일부 언론-주로 편향된 신문 조선, 중앙, 동아-에 실려 국민의 감동을 사기도 했다.

 

무지의 극치다. 아니 알면서도 너무 어깃장들을 놓는다. 그런 언론들의 가당찮은 주장에 휩쓸려 마냥 자신의 의사인 양 착각하고 황우석 용비어천가를 불러대는 무지한 소위 네티즌들, 무섭다. 국익이라니?

 

과학적 진실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한정된 진리다. 과학에 있어서는 절대적 진리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일일이 예를 들지 않아도 이 정도는 이미 상식으로, 모를 국민이 없을 것이다. 즉 줄기 세포 배양 기술, 그것이 계발되었다 해도 일시적인 것일 뿐 새로운 기술에 의해 얼마든지 뒤집혀 실용성이 떨어질 수도 있고, 그것이 긍정적인 부문인 난치병 환자 치료보다 부정적인 부분인 측면에서 예컨대 유전적으로 우월한 인간들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술로 사용된다면 그야말로 인류의 공적이 될 것이다.

 

황교수의 기술이 긍정적인 부분에 100% 사용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얼마나 효과를 누릴지는 현재 과학 기술의 발달 속도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부정적인 측면의 우려도 있고 보면 우리 국민 모두가 황 교수의 입장을 모두 옳다고 한다면 누가 봐도 편향된 것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외국 언론이 황 교수의 연구 논문을 검토하고 문제점을 파고들어 세계에 폭로했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외국 언론이 그럴 리 없다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후속 연구로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논문이라는 것은 후행 논문에 끊임없이 인용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오류나 문제점은 대부분 밝혀지게 된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 사실이 입증한다. 그냥 묻힐 수 있다고? 절대 그럴 리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국익과 관련된다고 하는 분야의 논문을 다른 나라의 과학자는 국익에 관심이 없어서 그냥 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후속 연구로 만회할 수 있었다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진다. 아직 결과를 모르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단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진실을 떠난 진리라는 것은 생명을 오래 유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에 만약 황 교수의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황 교수가 진실하다면 과학자의 자존심이라는 문제를 떠나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의아해 하는 사실에 대해 떳떳하게 재검증에 응해야 할 것이다. 과학자의 자존심도 결국 진리를 위한 자존심이라는 것이 또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절차가 복잡하고 실험 결과가 처음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 할지라도 거기에 진실이 있다면 꺼릴 이유가 하등 없는 것이다. 새로운 발견의 계기도 될 수 있잖은가.

 

지난 금요일(12.9.) 아침으로 기억한다. 네이버 폴(POLL)과학자는 객관적 검증에 임하고, 패가망신을 각오하고 탐사보도한 언론인의 용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평범한 글을 올렸는데 5분도 되지 않아 누군가에 의해 지워진 경험을 한 필자다. 혹시 그 당시 이를 지켜본 네티즌도 있으리라.

 

우리 한국은 정보통신 인프라 구축에 있어서 세계 제일을 호언하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네티즌의 힘이 대통령의 선택도 좌우할 만큼 무시하지 못할 세력으로 자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네티즌의 힘이 엉뚱한 방향으로 사용되거나 특정 세력의 여론 조작에 이용된다면 이 나라의 장래도 암담하지 않을 수 없다. 네티즌들의 성숙한 사실에 대한 이해와 정확한 판단이 요청된다.

 

일찍이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최신 컴퓨터로 주어진 시간 동안 내내 게임만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분통을 터뜨리며, 컴퓨터는 게임만 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 무진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 이 글을 써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생각과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갈등 속에 마친다.

 

 

20051211일 일요일 오후 4:48:12